
1. 책 소개
나는 김수련이다. 1991년에 태어났고
빼어날 수秀에 단련할 연鍊 자를 쓴다
나는 중환자실에서 일하는 간호사다
이것은 내가 간호사로서 7년간 겪어온 경험의 기록이다
“나는 실체를 가진 간호사로서 침묵을 깰 의무를 지닌다.”
여기 한 사람이 있다. 그는 서울의 한 대형 병원 중환자실에서 7년간 간호사 생활을 했다. 그가 『밑바닥에서』라는 책을 펴냈다. 위의 문장이 바로 저자가 책을 쓴 이유다. 그가 간호사로서 쓴 경험은 이제껏 드러난 적이 거의 없는 내용이다. 그는 자신을 밑바닥 존재로 규정지었다. 바닥은 더럽고 깊고 어둡다. 그 바닥에서 울리는 자기 목소리를 사람들이 달갑잖게 여길까 두려웠지만, 절망이 평생 계속될까 봐 입에 메가폰을 댔다. 그 소리는 멀리 깊게 퍼져나간다. 그의 정직하고 다정한 글을 통해서.
2. 책 내용 중
내가 보낸 날들에 대해서 말하고 싶다. 이렇게 초라해도, 엉망이어도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 지난날들 매일 트집 잡아 사소하게 불행했고 많은 날이 내 탓으로 구겨지며 너덜너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날은 햇살같이 빛났다. 그 얘기를 하고 싶었다._21쪽
인턴이 처방을 내겠다고 했으나 처방을 내지 않으면 전화로 다시 알려야 했다. 인턴도 바빴다. 수술실에 들어갔거나 MRI실을 가서 처방을 못 내기도 했고 그 상태로 내 근무가 끝날 때까지 처방이 안 나기도 했다. 나는 처방을 받을 때까지 안달복달하며 여기저기 전화를 해야 했다. 인턴은 종종 처방을 잘못 냈다. 그들도 처음이었다, 내가 처음인 것처럼. 정정하려면 그들이 받을 때까지 전화해야 했고 다시 내는 처방도 용량 따위가 틀리곤 했다. 별것 아닌 일들이 자꾸 꼬여 점점 늘어났다._30~31쪽
당신에게 나는 사람도 아니었을까? 그런 게 궁금해요. 아니면 내가 모르는 새 무슨 지독한 잘못을 했을까? (…) 당신과의 시간이 없었으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됐을까. 그걸 상상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내 마음은 더 건강했을 것이고, 벼랑 끝이 어떤 모양인지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가정은 의미가 없습니다. 이것들은 나를 지나쳐갔고, 내 마음은 무른 점토판 같아서 아무리 기쁜 일들이 일어나도 나를 할퀴고 지나간 것들은 지워지지 않아요. 2017년을 기억하세요? 그게 당신에게 어떤 해였는지, 그날들에 무엇을 했는지 기억하나요? 나는 그날들에 죽음과 함께 살았습니다._69~70쪽
고백하건대, 나는 내 글에 대해 부채감을 느낀다. 그 속절없는 죽음들에 대해 내 글은 솔직하지 못했다. 나는 내부에서 일어난 일들을 사실 그대로 담지 못했다. 내가 기록한 현장의 일들은 모두 가장 인력 상황이 좋고 물자 지원이 나쁘지 않았던 몇 번의 기억을 모아 누덕누덕 기운 것이다. (…) 내 글은 엉망이 된 시신 위에 덮은 흰 시트 같은 것이다. (…) 우리는 의욕만큼 달려보지도 못했다. 우리가 열심히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간호사가 너무 모자라서, 훈련되어 있지 않아서. 아무리 애써도, 매일 녹초가 되도록 진을 빼도 도무지 닿을 수가 없어서 속절없이 환자들을 잃어버렸다. 그것들을 적지 못했다. 나는 지금 이 글에서조차 솔직하지 않다. 죽음의 모서리를 환자의 가족들이 모르기를 바란다. 아니, 알아야 한다. 그들의 죽음이 석연치 못했다는 것, 다른 환경에서는 어떤 가능성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것, 그래서 그 죽음들이 존중받지 못한 죽음이라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_150~151쪽
그리고 또 하나의 요소가 있다. 머릿수다. 아무리 경력이 많아도 환자 수에 비해 간호사가 적으면 그 중환자실에 있는 모두가 궁지에 몰린다. 주도면밀한 모니터링과 빠른 대응이 우리 일인데, 한 명 한 명이 더 많은 환자를 봐야 한다면 주의력은 떨어지고 피로도는 급격히 상승한다. 대부분 정해진 휴식 시간 없이 장시간 일하는 간호사들은 피로가 누적될수록 실수가 늘어나고 종종 중대한 징후를 놓친다. 그것은 때로 치명적이다. 그래서 환자와 간호사의 비율은 환자의 사망률과 매우 뚜렷한 상관관계를 보인다. 간호사 한 명이 담당하는 환자가 한 명 증가할 때마다 환자의 사망률은 7퍼센트 증가한다. 담당 환자가 한 명 더 늘면 14퍼센트, 거기서 한 명 더 늘면 31퍼센트. 이 숫자는 끝도 없이 늘어난다._200~2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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